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감상완료 천선란
장르 : SF, 아포칼립스
발행일 : 2025.10.27
쪽 수 : 300p
추천 여부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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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올해 30권 넘는 소설을 보며 다른 작가님 소설도 너무 좋고 재밌었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역시 내 최애 작가는 천선란 작가가 맞는 것 같다. 문장 하나 하나가 어렵지 않은데 그 안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마음을 후벼파는게 있다.
그래서 첫번째 이야기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읽다가 진짜 내가 힘들어하는 묘사가 있었는데 그거 보고 그냥 너무 힘들어서 카페에서 안 울려고 한 문장 읽고 트위터하고...읽고 트위터하고...
... 뒷 내용들도 힘들고 마음에 상처가 생겼는데 첫번째 이야기가 나한테 너무 힘들었어.
마지막 이야기야 예전에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에 수록 됐고 읽어봤으니 다시 상기하는 식으로 읽어서 좋았는데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는 읽고 진짜 눈물 줄줄 흘렸다.
좀비 아포칼립스와 SF를 빙자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좀비 아포칼립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소설이여서 좋았긴했어.
좋았던 문장들도 많고.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나는 언제나 소통이 최우선이야. 대화로 해결하지 못할 건 없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거야.
신이 묵호에게 모든 걸 다 빼닷은 게 미안했던 건지, 아니면 오히려 지독하게 미워했던 건지 질긴 생명력 하나를 남겨주었으니까.
죽어가는 묵호는 괜찮았는데 왜 이미 죽어버린 묵호는 포기가 안 될까. 죽음은 끝이고, 내가 닿을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 같았는데, 죽은 채 곁에 있는 묵호는 닿을 수 있어서일까. 끝을 넘었으니 영원도 가능할 것만 같다.
폭력의 이유를 찾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안그러니? 원인도 이유도 없는 건 종말이잖니. 지금처럼. 그러니 이유를 찾아야했어. 내 삶을 종말로 놔주지 않으려면.
옥주, 너는 찾았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바깥에서 얻어온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았던, 언제든 돌아갈 둥지인 줄 알았던 하나뿌인 부모가 우리의 삶을 종말로 만들려 했던 이유.
외계인이 침략하든, 소행성이 충돌하든, 재난이 닥쳐오든, 모든 종말의 순간에 인물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서로를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순간에도 애틋하게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여. 슬프지만 아름답게 극적인 이별을 맞이할 수 있어. 하지만 좀비는 아니거든.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해. 아름다운 마지막일 아니라 시체가 되어버린 처참한 몰골을 봐야 해. 이게 가장 끔찍한 종말이야.
시시함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얼마나 악을 쓰고 버텨야 하는지. 이 모든 시시함, 별일 없이 무난한, 어제인지 오늘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특색 없는 나날들이 반복되는 거. 시계를 보지 않아도 노을로 하루의 때를 알게 되는 거. 어떤 기척에도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되는 거. 시간이 멈춘 듯 천ㅊ너히 흐른다고 여겨지게 되는 거. 그 기저에는 소용돌이를 버텨내는 쇠몽둥이 같은 단단함이 있어야 하잖아.
좀비는 왜 인간만 먹을까.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뭔지 아는거야. 곰팡이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먹을지도 모른다는거.
그러니 서로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얼마나 돼?
사랑이 파멸이 되고 간절함이 재앙이 될 확률이.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거 아니야?
죽음이 들이닥친 순간에 네 존재를 알리는 데 써야지. 세상한테.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망가진 세상에서도 열심히, 쉬지 않고, 느리지만 확실한 숨을 쉬자.
책임감은 공포에서 온다. 살아가며 느낀 공포가 책임감을 키운다.
당장 죽을 것 같고 ,가끔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있구나.
우리가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건 상대가 본인 상식 안에서 해결 되지 않는 예측 밖의 일을 벌이기 때문이에요. 상대를 알지 못하면 두려워하게 되고, 두려움은 혐오와 기피의 모습으로 바뀌죠. 인류는 알지 못하는 상대를 두려워하도록 진화했으니까요.
우리를 아십니까
다음이 없어야 마음이 다급해지니까. 사람은 다급해질 때 진심을 잘 마주하거든.
탄생은 기적이고 죽음이야 말로 예정된 거다. 탄생의 기쁨에, 죽음의 슬픔에 휩싸여 알아차리지 못한 것 뿐이다.
선이 생기면 오래 살 수 없어. 넘을 수 없다는 좌절이 마음을 늙게 해.
내가 그간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한 걸 기특하게 여겨서 신이 우리 둘을 저승에서 만나게 해주면 좋으련만. 우리는 욕심이 없잖아. 많은 걸 바란 적이 없잖아.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어디든 저승의 남은 땅에 같이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데.
낭만적인 멸망을 맞이하자. 지구를 독차지한 기념으로.
우주에서 인간만이 겪을 수 있는, 오로지 인간만이 슬프고 인간만이 고통스러운 재난 같았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