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드 후기 천선란
장르 : SF,단편
출시일 : 2022.06.22
쪽 수 : 418
추천 여부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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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천선란 작가님 문체나 소설의 키워드가 항상 내 취향이다.
그래서 이 소설집 안에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내 취향이다.
물론 몇 개는 그다지 취향은 아니라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소설이니 흥미롭게 감상했지만 유독 좋았던 소설들이 몇 개 있다.
내 픽은 <흰 밤과 푸른달> , <옥수수밭과 형>, <이름 없는 몸>, <-에게>다.
저 4 작품이 너무 취향이고 재밌었다. 저 작품들로만 따지면 별 5개다.
그런데 4인 이유는 나머지 소설들이 그냥 저냥 취향까진 아니다 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이름 없는 몸>은 진짜 너무 좋았던 소설이라서 따로 얇게라도 <-에게>랑 묶어서 내주면 살 의향이 있다.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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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본성이라기에 너무 파괴적이었고, 인간의 본성이라기에 너무 순애적이었다.
-흰 밤과 푸른 달-
땀을 내면 행복해진다고, 명월이 그러지 않았던가. 땀 한 방울, 한 방울에 고민과 슬픔이 섞여 있다고 생각하면 진탕 땀을 빼고 난 후 편안해진다는 걸 느낀다고 땀이 범벅된 상태로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강설은 정말로 큰일 났음을 느꼈다.
삶 구석구석에 명월이 있음에.
-흰 밤과 푸른 달-
"꼭 와."
좀 웃으며 말하고 싶은데.
"늑내는 귀소본능 같은게 있다며. 그래서 죽기전에 기어 들어온다는데 너도 죽기전에 기어들어와. 여기서 죽어."
추위에 얼어서 그런 건지 웃음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는 건지 명월의 입술 끝이 씰룩거렸다.
"오라는 거야,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거야?"
"죽을 거면 내 눈앞에서 나랑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죽으라는 거야. 안 죽을 것 같아도 내가 죽기전에 와. 내가 너보다 빨리 늙을 거 아냐. 아무리 늦어도 70년 안에는 와. 100살 넘어서 살 생각 없으니까."
-흰 밤과 푸른 달-
"내가 절망할 걸 알기에 숨겼다는 거지?"
『폭동은 절망에서 옵니다.』
"폭동은 희망에서 와."
-푸른 점-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장례를 치지 않는 것일까. 인사하지 않으면 이별은 유예되니까.
-옥수수밭과 형-
내가 왜 살아야하는가. 단지 재가 나를 먼저 죽이려했다는 이유로.
나는 왜 죽어야 하는가. 단지 재가 나를 불편해 한다는 이유로.
내가 그 애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세상에서 보냈다면 나도 그 애만큼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천재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림을 꽤 잘 그렸고, 악기도 꽤 다룰줄 알았다.
내게도 세상의 시간이 허락됐다면…….
-제,재-
너를 부르고싶은데 이름이 너를 따라 죽은 모양이다. 오랫동안 불리지 않은 이름은 딱딱했다.
-이름 없는 몸-
어떤 비명과 폭력에도 자신들이 그래왔던 것 처럼 누구의 구원도 바리지 못하게 해주세요.
-이름 없는 몸-
나는 어느새 노트를 가득채웠던 우리의 비밀 일기를 까먹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통 네가 어떤 말을 적어놨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가장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의 모든 것을 조금씩 잊어가는 중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너는 더 빛바래질 것이다. 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잊고, 네 목소리를 잊고, 네 얼굴을 잊고, 그렇게 끝내 네 이름을 잊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내가 아니면 너를 누가 기억해주지?
-이름 없는 몸-
만일 네가 나를 보고 뛰어든다면 나는 기꺼이 너를 끌어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뿐이겠지. 아무리 그리웠어도 나는 너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이름 없는 몸-
"죽는 자를 잊지 않고 추모하는 사람들 덕에 귀신이 이름을 되찾은 경우가 종종 있지. 그러니 이미 이승을 떠난 너는 이 강을 건너 환생의 문을 넘기 전 까지 네 인생의 억울함에 목애지 말고 행복했던 순간만 떠올려라. 그게 저들이 너에게 바라는 가장 간절한 바람일 테니. 네 몫의 서글픔은 저들이 다 해줄 것이니. 다음생에는 네 이름을 절대 잊지 말거라."
- ─에게 -